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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금융위 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제동 건 이창용
현재 법정통화 발행으로 생기는 주조 수익(시뇨리지)은 정부 세입에 반영되는 식으로 공공 목적에 활용된다. 하지만 향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대규모로 확산될 경우 국가에 귀속되고 사회에 환원돼야 할 자원이 민간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문제의식이다.
– 언론사: 서울경제 | 보도일: 2025.06.12
시뇨리지의 개념과 역사적 기원
시뇨리지(Seigniorage)는 화폐를 발행하여 얻는 이득을 의미하는 경제 용어입니다. 그 어원은 중세 시대의 봉건 영주(seigneur)가 화폐를 주조할 권리를 독점하고, 화폐의 액면 가치와 주조 비용의 차액을 이득으로 취했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동전이나 지폐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원가)은 100원인데, 그 액면 가치를 1,000원으로 정했다면, 그 차액인 900원이 바로 시뇨리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뇨리지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정부나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현대 금융에서의 시뇨리지 발생 원리
현대 사회에서는 화폐 발행 권한이 각국 중앙은행에 독점적으로 부여되어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하고, 이 화폐를 금융시장에 공급하면서 시뇨리지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5만 원권 지폐를 발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몇백 원에 불과하지만, 그 액면 가치는 5만 원입니다. 이처럼 액면 가치와 발행 비용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시뇨리지입니다. 이 시뇨리지는 중앙은행의 수익으로 잡히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재정 수입으로 편입되어 공공 목적에 활용됩니다.
한편, 시뇨리지는 화폐의 실물 발행뿐만 아니라 통화량을 늘리는 모든 행위에서 발생합니다. 한국은행이 국채를 매입하여 시중에 돈을 풀거나, 시중은행의 지급준비금을 완화하여 신용창조를 유도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시뇨리지를 창출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시뇨리지와 정부 재정 및 인플레이션의 관계
시뇨리지는 정부의 재정 적자를 보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여 돈을 빌리는 대신, 중앙은행을 통해 화폐 발행량을 늘려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방법으로, 무분별한 화폐 발행은 시중에 통화량을 급증시켜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을 초래합니다. 이 때문에 시뇨리지는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라고도 불립니다. 인플레이션 조세는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서 국민들의 실질 자산 가치가 감소하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줍니다. 역사적으로 군인 황제 시대 로마나 16세기 스페인처럼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통해 재정을 충당한 국가들은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글로벌 시뇨리지와 기축통화의 특권
국제 금융 시장에서 시뇨리지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에게 막대한 특권을 부여합니다.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달러를 발행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재화와 서비스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달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가 유지되는 한, 미국은 화폐를 더 발행하더라도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 않는 이점을 누립니다. 이러한 특권은 미국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고,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주요 기반이 됩니다. 이는 기축통화가 아닌 국가들이 누릴 수 없는 독점적인 이익으로, ‘글로벌 시뇨리지’라고 불립니다.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시뇨리지 쟁점
최근 금융 시장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시뇨리지에 대한 새로운 쟁점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은 국가의 화폐 발행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특정 자산에 가치를 연동하여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암호화폐입니다. 만약 민간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대규모로 발행하여 통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기존의 국가에 귀속되던 시뇨리지가 민간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통화 질서를 교란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중앙은행과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의 법제화와 규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